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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천국’ 외친 정부, 현실은 ‘전세대란’
‘세입자 천국’ 외친 정부, 현실은 ‘전세대란’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7.08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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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겠다더니 전셋값까지 올려놔
‘임대차 3법’ 시행되면 전세 품귀현상 더 심해질 듯
공급 부족한데 규제만... ‘부동산 대책’ 왜 이러나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든 강남구 부동산 (출처: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신문 DB)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든 강남구 부동산. (출처: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신문 DB)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 서울 아파트의 전셋값이 53주째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오름세가 끝이 없지만, 비수기인 여름철임에도 매물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전·월세 가격으로 불안정한 주택 임대차시장의 안정과 세입자 보호를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 개정안(임대차 3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이 전세난을 가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집값 상승·대출 규제·전셋값 폭등으로 이어진 6·17 대책 후폭풍

현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집값을 잡겠다며 출범 후 지금까지 22번에 걸쳐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집값이 안정되기는커녕 규제 예정지역에 대한 부동산 사재기를 유발해 결국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횟수만큼 집값을 올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규제의 불똥은 투기꾼이 아닌 실수요자에게 튀었다.

가장 최근 발표된 ‘6·17 대책’도 갈수록 역효과가 커지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는 이 단지의 전용 59㎡(공급면적 25평형)는 3.3㎡당 1억 원꼴인 25억 원에 거래됐다. 사상 최고가 기록이다. 6·17 대책을 통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은 물론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집값 상승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규제 인근 지역인 김포·파주·천안·계룡시 등에서는 풍선효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집값은 올랐는데 주택담보 대출 규제는 강화되었으니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늘어난 전세 수요에 전셋값도 껑충 뛰었다. 강남권 주요 아파트 단지들이 잇따라 전세 신고가를 기록했고, 감정원 기준으로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전세 시장의 매물 품귀 현상까지 더해져 전셋값 폭등을 부추기고 있다. 전세 물량이 귀해진 이유는 정부가 6·17 대책을 통해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조합원의 분양신청에 2년 이상 실거주를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재건축 아파트는 주인이 실제로 거주하기보다는 투자수요가 많다. 강남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는 4,424가구 가운데 68%가량인 3,000가구에 세입자가 산다.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서 집주인들은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대로 세입자를 내보내고 무리해서라도 실거주를 해야 한다.

 

사라지는 전세...세입자들의 시름만 깊어진다

지금도 전세 물량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데 가을 이사 철이 되면 본격적인 ‘전세 대란’이 시작될 수 있다. 오는 8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청약 대기 수요까지 전세 시장으로 몰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분양가를 억제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대부분이 인근 시세의 절반 수준인 ‘로또 아파트’가 됐다. 청약 가점이 충분한 세입자라면 기존 아파트를 매매하기보다 새 아파트 청약을 노리며 기존 전세 계약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3기 신도시 분양을 기다리는 대기 수요도 있다. 교산지구가 들어서는 하남시의 경우 최근 두 달 새 미사지구와 구도심 등의 아파트 전셋값 호가가 최고 1억 원까지 오르고 있다.

여기에 재건축으로 인해 지난 5월 25일부터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4지구(3000가구)가 이사를 시작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만 9,650가구가 이주행렬에 가세한다.

전세 수요는 많지만, 입주 예정 물량은 많이 감소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강남구와 서초구의 입주 예정 물량은 각각 2,395가구, 2,505가구에 그친다. 내년 상반기에는 2,638가구가 준공될 예정이다. 내년 서울 전체 입주 예정 물량도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아파트 기준 총 2만 3,217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4만 2,173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진 초저금리와 보유세 상승 부담 때문에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준공된 아파트에는 양도세 면제를 위해 집주인이 입주하는 경우도 많다.

출처: 픽사베이(Pixabay)
출처: 픽사베이(Pixabay)

임대차 3법 시행 예고에 전세난 가중 우려 커져

전셋값 상승으로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이 흔들리자 정부 차원의 ‘서민 주거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전셋값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하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21대 국회에서 임대차 3법을 발의했다. 임대차 3법은 정부가 주택 임대시장 안정을 위해 추진 중인 ‘전·월세 신고제’와 전세금 인상률을 최대 5%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임대차 계약이 만료됐을 때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등이다.

임대차 3법이 적용되면 세입자는 기존 계약 2년에 더불어 다시 한번 2년 계약을 추가로 갱신 요구할 수 있고 이때 임대료 상승은 최대 5%로 규제받게 된다. 여기에 전·월세 재계약 기한을 사실상 무한연장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 같은 규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전세 물량이 부족한 임대인 우위 시장에서는 이 같은 규제가 부작용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전·월세 상한제로 계약갱신 시 전셋값을 크게 올리기 어려워지면 집주인들이 정책이 시행되기 전 인상에 나서면서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 아무런 장점이 없는 전세 대신 월세로 전환하도록 자극해 전세 매물 감소를 부채질할 가능성도 크다. 임대소득세 등 부동산 세제를 강화하는 추세에 집주인이 월세 비중을 높여 세금을 충당하려는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떠넘겨질 수도 있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전세 매물이 사라져 세입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전세 공급마저 줄이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세입자들을 돕는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서울시 아파트 전경 (출처: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신문DB)
서울시 아파트 전경. (출처: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신문DB)

22번의 시행착오, 학습효과 없는 정부

부동산 대책을 성토하는 여론이 들끓자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부동산 대란과 관련한 긴급 보고를 받고 추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러나 보유세 강화 등 세제 카드를 활용한 수요억제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6·17 대책으로 수도권 대출 규제가 갑자기 강화되자, 이미 계약한 아파트의 중도금이 나오지 않아 계약금을 손해 보거나 내 집 마련 기회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이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서민들의 고통이나 현 부동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청와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촌극까지 벌이고 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참모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하며 2주택 이상 공직자들의 주택 처분을 재차 강력히 권고했다. 다주택자인 본인 역시 아파트를 팔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초 서울 반포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으로 알렸다가 자신이 보유한 두 채 중 충북 청주 아파트만 매각하기로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청주는 노 실장이 내리 3선을 지낸 지역구이기도 하다.

비난이 계속되자 오늘(8일) 노 실장은 결국 반포 아파트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신뢰를 잃은 상황에 노 실장의 행보는 과연 현 정부가 서민을 위한 근본적인 집값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지난 3년간 22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잡지 못했고 여러 가지 부작용만 발생했다.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돌아갔다. ‘규제’가 해법이 아니라면 방향 전환도 생각해 봐야 한다.

증시 격언 중에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마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은 주식시장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수요를 원하는데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서 써 놓은 시나리오대로 혼란이 진정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급 확대의 근본적 해법이 필요할 때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정민아 기자] sturzreg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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