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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등대로 접근한다
[김경준 칼럼]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등대로 접근한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4.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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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인문학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다

[한국M&A경제]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21세기 첨단기술의 시대에 전통적 인문학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먼저 이러한 흐름의 연원을 살펴보고 인문학에 대한 올바른 접근방식을 생각해 보자.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IMF 이후 인문학에 대한 한국 기업의 인식 변화

1997년 IMF구제금융 이후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기업경쟁력의 핵심이 과거 설비를 중심으로 한 하드파워에서 기업문화, 혁신역량, 리더십과 같은 소프트파워로 이동했다. 소프트파워의 원천인 인간과 조직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더욱이 일부 국내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의 선두로 부상하면서 과거의 추종자 전략이 한계를 보이고 향후 선두권을 유지하기 위한 창조자 전략이 불가피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나아가 21세기 글로벌 경제의 특징인 창의력, 융합 등이 화두가 되는 디지털 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기업인들이 시장과 고객, 기술이라는 기존의 관점을 확장하여 역사, 철학, 문화, 예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접근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과거 궁핍한 시절에서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야 했지만, 일정수준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간과 사회, 문화와 예술로 관심사가 확대되는 것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이는 일반인들의 기초생활이 충족되면서 인문학이라는 창문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올바른 관점을 정립하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사진=애플코리아
사진=애플코리아

◇스티브 잡스가 불러온 인문학 트렌드

이러한 추세에서 소위 우리나라를 강타한 인문학 트렌드의 기폭제는 2011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 발표회장이었다. 1955년생인 스티브 잡스는 56세의 길지 않은 삶에서 PC, 애니메이션, 음악, 스마트폰, 태블릿, 디지털 출판의 6가지 혁신을 주도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삶의 출발은 초라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시리아 출신 미국 유학생과 미국인 여대생 사이의 사생아로 출생하여 입양되어 자랐고 1970년대 초반 대학 1년 중퇴 후 히피 생활을 하는 등 일종의 일탈기간을 거친다.

1976년 애플을 설립하고 1984년 매킨토시로 크게 성공하였으나 다음 해에 애플에서 축출되었고, 디지털 애니매이션 사업을 시작하여 토이스토리를 성공시키면서 1996년 애플에 복귀하였다. 2000년대 들어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폰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오른 정점에서 세상을 떠나는 삶은 출생의 비밀, 성장기의 방황과 고난, 절정에서의 죽음 등 전형적인 영웅담의 서사구조를 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3월, 아이패드2 발표회장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애플의 DNA는 기술 (technology)을 자유교양 (liberal arts) 및 인문학(humanities)과 결합시키는 데 있다고 언급하였다. (It i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s that make our heart sing.)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정식전기(正傳)에 “어릴 때부터 항상 저 자신이 인문학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자공학도 무척 맘에 들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폴라로이드의 에드윈 랜드가 한 말을 읽었어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걸 읽자마자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지요”라는 회고가 있다. (에드윈 랜드는 1907년생으로 1947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출시한 혁신가이다.)

스티브 잡스가 언급한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은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개인적으로 스티브가 추구한 개념은 우리가 사용하는 문사철(文史哲)의 인문학보다는 자유교양의 예술적 심미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인문’의 결합이라기 보다는 ‘기술과 예술’ 또는 ‘기술과 자유교양’의 만남을 통한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확장으로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의 융합’에 해당한다.

인문학을 통하여 삶과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가지려는 흐름은 바람직하지만 매사가 그러하듯이 과유불급이고 균형이 필요하다. 최근 인문학 열풍을 타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관련 소양을 갖추면 조직과 개인의 창의력도 높아지고 조직문화도 건전해진다는 식의 만병통치약처럼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이 모두 그러하듯 지식 자체의 완전성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인문학의 특성상 인간과 사회를 파악하는 입장과 논리도 다양하다. 다만 인문학을 통해 개인의 삶과 조직의 현실을 긴 호흡으로 성찰하면서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등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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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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