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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21세기 교양,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적 소양의 균형
[김경준 칼럼] 21세기 교양,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적 소양의 균형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7.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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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관점에서 본 4가지 인문적 소양

[한국M&A경제] 21세기는 융합의 시대이다. 디지털 기술을 매개체로 기존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기존 지식도 경계를 넘어 활발하게 교류되는 시대이다. 

경제학과 물리학이 만나고 생물학과 경영학이 접점을 찾으며 역사에서 리더십을 탐구하는 식이다. 포탈을 통해 검색하면 순식간에 필요한 지식에 접근하는 시대에 지식 자체보다는 지식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치와 관점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핵심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개미를 통해 개발된 통신 데이터 경로는?

개미 연구와 통신 네트워크 기술 개발.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가 만나서 이루어낸 혁신의 사례를 알아보자. 1990년대 초 프랑스텔레콤의 엔지니어 에릭 보나보는 미국 산타페연구소의 세미나에서 곤충 생태학자와 대화하던 중 통신 속도를 개선할 아이디어를 얻었다. 

개미 집단은 먹이나 목표물을 찾을 때 ‘탐색 전문’ 개미들을 보내고, 가장 빠른 길을 찾은 탐색 개미는 강한 페로몬을 풍겨 다른 개미들을 불러 모은다. 

보나보는 ‘가상의 개미’가 통신 네트워크의 분기점이나 경로 장치에 ‘가상 페로몬(신호)’을 보내면 통신 데이터를 보내는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나보의 아이디어를 영국 통신사인 브리티시텔레콤이 이 아이디어를 발 빠르게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경영학계에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와 지식이 결합해 혁신이 일어나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지였던 메디치 가문이 여러 방면의 예술가들을 모았는데,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만나게 되면서 르네상스라는 큰 물결이 일어났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 2016년 4월 23일>

인간이 완벽하지 않듯이 인간의 문명도 나름의 문제를 내포하고 발생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 문명의 역사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이었다. 인문학도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인문학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과거로부터 던져진 화석이 되어 오히려 현재를 구속하는 기제가 된다.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인문적 소양도 미래 관점에서 흡수할 필요가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유연성

과학발전도 단편적 지식의 집적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상호관계에서 진행된다. 인문학적 지식의 축적과 발전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조선 시대 지식인의 필수지식을 담은 논어 맹자와 같은 동양의 고전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지만, 그 의미와 해석은 완연히 다르다. 오래전에 성립된 고전적 콘텐츠가 과거의 해석에 매몰되면 그야말로 화석이 된다. 하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새로운 에너지다. 따라서 인문적 소양도 기존 지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개방성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지식은 회의에서 출발한다. 인문학도 지식인 이상 기존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회의하고 질문하는 과정을 거쳐야 체화가 된다. 또한 새로운 지식과 관점에 대하여 열려있어야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거나 지식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개방성이 부족하면 기존의 지식과 프레임으로 세계를 반복적으로 해석하는 협소함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용성

인간이 축적한 지식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가 되기에 실질적 가치를 가진다. 

어떤 시대이건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지식체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지식체계가 공리공론에 흐르고 막연한 관념의 세계만을 추구하다 보면, 논리는 정연하고 토론은 세련되었으나 실제로 눈앞에 닥친 현실을 보지 못하고 큰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는 역사에 비일비재하다. 

 

◇창의성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알면서 새로운 것을 익힌다는 의미는 인문학에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창조되는 것이다. 새로움을 잉태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특히 변화가 빨라지고 나날이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요즘 세상에 인문학이란 분주함 속의 고요함을 주는 휴식처가 됨과 동시에 기존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학자로 2015년 82세로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 박사는 별세 직전 뉴욕타임즈에 인생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글을 남겼다. 그 중의 대목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저는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아왔으며,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Above all, I have been a sentient being, a thinking animal, on this beautiful planet, and that in itself has been an enormous privilege and adventure.)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능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탐구하고 인식을 넓히려는 능력은 고유의 능력이자 특권이다.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인문학, 사회와 집단에 대해 생각하는 사회과학, 자연법칙을 규명하는 자연과학 모두 인류의 지능과 문명의 산물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가 이러한 영역을 접하고 느낀다는 것도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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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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