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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경험이 지식보다 강하다
[김경준 칼럼] 경험이 지식보다 강하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5.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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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발전의 원동력은 현실에서 갈무리된 이론이다

[한국M&A경제] 미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어떤 체제나 사상의 형성은 이론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는 현실 속에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고 갈파했다. 서양 근대정치학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마키아벨리도 학자가 아닌, 부유하지만 군대는 없는 소국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낸 경험으로 군주론을 집필하였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가는 학자들의 고유한 영역은 존재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지식보다 강력한 것은 경험이다. 지식이란 결국 경험의 필터를 거치면서 검증되는 것이고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추상적 고담준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갈무리된 이론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지식의 습득’과 ‘의미의 깨달음’의 차이

한자를 통해서 이런 점에 접근해 보자. ‘지식의 습득(學)’과 ‘의미의 깨달음(覺)’은 비슷하나 다르다. ‘배울 학(學)’은 학생이 스승 앞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지식의 전달을 의미하고 ‘깨달을 각(覺)’은 스승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見)을 나타낸다. 즉, ‘학’에서 출발하여 ‘각’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깨달아야 하는데, 지식이 경험의 필터를 거치면서 갈무리되어야 깊이 깨닫게 된다고 본다. 특히 인문학은 삶의 경험과 연륜이 쌓여야 이해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고등학생이 공자의 논어를 읽고 대략적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되 그 깊은 의미를 깨닫기는 어렵다. 오히려 10대 고교생이 논어를 읽으면서 깊이 깨닫고 공감한다면 이상한 일이다. 40대 전후가 되어서야 깊이가 느껴지는 논어를 만약 10대가 이해하였다면 그야말로 천재이거나 바보이거나 간에 일반적 범부는 벗어난다.

인간의 지식이 모두 그러하지만 인문학 지식은 특히 더하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주관적 관점에 기반하는 속성상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표면적인 내용에 매몰되기에 십상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의 지식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축적된 실질적 경험이라는 필터로 갈무리되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인문학의 지식이란 마치 논어를 읽는 중학생처럼 의미도 모르고 글자만 읽거나 아니면 그 액면에 눌려 전후좌우를 가리지 못하고 맹신하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제한된 경험으로 폭넓은 인문학의 지식을 갈무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비록 40대의 중년에 들어섰다고 해도 그 경험은 교육과 직업의 주변에 제한되게 마련이다. 또한 자신의 경험에만 기반하면 자칫 인문학의 콘텐츠가 제공하는 풍부한 지식과 통찰을 편협한 주관의 울타리에 가두게 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인문학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기에 어차피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아는 만큼 이해하고, 경험한 만큼 느낄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콘텐츠를 접하고 이해하면서, 경험이라는 창문이 공감하고 깨닫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가면서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는 일반인들이라면 일상적 삶 속에서 느끼는 바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러한 부분이 인문학적 지식을 만나 발효하여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책만 읽는 삶이란 사실 지식은 늘어날지 몰라도 사물의 본질을 깨닫기는 어렵다. 인문학자라면 지식 자체를 추구하겠지만, 사실 지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현실이란 역시 간접적이다. 세상의 본질은 현실을 접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하게 마련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올바른 가치관 형성의 이유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들은 등대의 불빛을 보고 갈 길을 정한다. 등대가 없어도 항해할 수는 있겠지만 안내자가 되는 등대가 있으면 항해는 더욱 안전해진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항해하는 배가 등대를 기준으로 나아가듯이 인생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개인의 삶에서도 등대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현실 생활에서 타인을 대하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 건전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개인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관이 왜곡되어 있으면 삶도 왜곡되고 제한적으로 되게 마련이다.

가치관은 가정교육, 학교 교육, 개인학습, 종교적 신념, 사회적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되어 형성된다. 어린 시절에는 주어지는 교육의 영향이 크지만 성장하고 나서는 개인의 경험과 선택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인문학은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발전시켜온 아이디어와 지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살아있는 경험과 교훈을 주는 일종의 등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문학은 도구이다. 인간이 축적한 지식은 모두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학문과 같은 지식체계는 물론 신성한 존재를 따르는 종교조차도 맹신에 빠지면 인간의 삶을 왜곡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듯이 인문학의 사고방식과 아이디어도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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