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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신화와 전설, 역사와 사회의 관계
[김경준 칼럼] 신화와 전설, 역사와 사회의 관계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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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통해 바라본 역사

[한국M&A경제] 인간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남과 다르게 특별하다’는 감정은 교만일 수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로도 기능한다.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라도 조상 중에서 훌륭한 사람을 찾아 모범으로 삼고 개인과 후손들의 자부심으로 삼도록 노력한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속감과 자부심의 원천이 될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다. 고대 세계의 인간들이 생활하였던 환경의 특징을 반영하여 형성된 신화와 전설은 공동체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특유의 세계관, 가치관으로 형성되었다.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는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갖췄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고 공통의 신화들을 짜냈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또한 신화는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집단 형성의 경험과 과정이 압축되어 있다. 이런 배경에서 10만 장의 기록을 역사로 정리하면 1,000장으로 요약되고, 1,000장의 역사를 다시 1장으로 압축하면 신화가 된다고 비유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신화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강화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단이라고 전해온다. (사진=강화군청)
강화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단이라고 전해온다. (사진=강화군청)

◇단군신화로 본 고대 국가 성립의 역사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접하는 단군신화(檀君神話)는 판타지의 세계이다. ‘하늘의 신(天神)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3,000명을 거느리고 땅으로 내려왔다.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여러 신과 세상을 다스리는데,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하여 환웅은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100일 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참을성 많은 곰만이 삼칠일(三七日)을 견뎌내 사람이 되었고(熊女),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평양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고, 뒤에 아사달에 천도하여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상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국가 성립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시베리아 지역 바이칼 근방의 하늘을 숭배하는 부족의 한 갈래가 남방으로 이동하여 태백산 근방에 근거지를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새롭게 유입된 이민족에 대하여 기존 부족들은 저항하거나 협력하는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대표적인 2부족이 다른 입장을 취했다. 호랑이를 부족의 상징물, 토템으로 삼던 부족은 도래한 이민족에 저항하여 이 지역을 떠났으나, 곰을 부족의 상징물, 토템으로 삼던 부족은 협력하여 신생국가에 참여하고, 대대로 왕비를 배출하는 왕비족으로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다.

신과 인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기록물을 남기기 어려웠던 고대에서 수백 년에 걸친 이동과 정착의 역사가 신화로 압축된 상징의 형태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신화를 통해 본 그리스 형성 과정

서양의 대표적 신화인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도 그리스 형성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기원전 25세기경에 크레타 문명이 성립되면서 시작되어 기원전 4세기 아테네를 중심으로 만개한 그리스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신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이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은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라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서 태어난 형제로서 신들도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갈등하고 질투한다.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등의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중간적 존재들이다. 

신과 영웅은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노력하는 인간을 도와주는 수호신의 개념이었다. 그리스 종교에서는 신화만 있을 뿐 경전이 없고 신탁을 주관하는 무녀 외에는 별다른 사제도 없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종속적으로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보았기에 인간의 이성과 지식이 중심이 되는 철학이 태동했고,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민주정이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신의 존재,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운명 등의 주제는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개인적 차원에서의 신앙은 엄밀하게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 타인이 특정 시각이나 입장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14세기 서양 르네상스 이후 500여 년 동안 성립되어 온 근대성의 핵심인 종교와 세속의 분리가 우리나라에 잘 정착된 결실이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지구 상의 특정지역에서는 종교와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적대시하고 심지어는 폭력행위까지 발생한다. 자신의 신념체계를 절대시하고 타인의 신념체계를 부정하기에 생겨나는 부정적 측면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신과 인간, 종교와 세속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이 믿는 신념체계는 소중하지만, 이를 위해 타인을 해칠 권리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공유하는 것이 근대문명의 중요한 가치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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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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