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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펀드매니저와 철학자
[김경준 칼럼] 펀드매니저와 철학자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4.2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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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세계관이 펀드매니저의 시장관으로 확장
조지 소로스와 칼 포퍼의 관계를 짚어보다

[한국M&A경제] 철학자와 펀드매니저는 같은 인간계에 속해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의 외계인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세상만사 본질적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철학자의 세계관이 펀드매니저의 시장관으로 확장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바로 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와 저명한 철학자 칼 포퍼의 관계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와 철학자 ‘칼 포퍼’

헝가리 출신 유대인 조지 소로스는 젊은 시절 철학을 공부하고 평생을 스승으로 받든 칼 포퍼의 영향을 받았다. 칼 포퍼가 정립한 세계관에 기초한 독자적인 투자이론을 정립했고 오늘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소로스는 2차대전 후 영국으로 이주했다. 가난한 이민자로서 철도역의 짐꾼, 웨이터 등 닥치는 대로 돈을 벌며 런던정경대학에 입학해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칼 포퍼를 만나 철학을 공부하고 1954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수가 되어 철학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포기하고 투자은행업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다.

190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칼 포퍼의 대표작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다. 그는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규범이나 가치도 고정되지 않고 필요에 의해서 언제든 개선해 가는 것이며, 인간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도 오류가 있으며 이를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인간과 사회의 오류를 인식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를 통해 개선해 나가는 사회가 열린 사회(open society)인 반면 닫힌 사회 (closed society)는 불변적인 도덕과 이상향을 기준과 목표로 삼고 역사는 이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회이다. 플라톤의 국가, 유토피아 등과 같이 완전무결한 도덕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는 사회관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향한다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소로스의 투자철학은 평생 스승으로 존경한 포퍼 사회철학의 열린 사회 개념을 접목해 만들어졌다. 오류성 개념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한 데다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관점은 항상 부분적이고 왜곡되며, 인간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킨다.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도 시장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며, 효율적인 시장도 항상 오류가 있으며 시장 메커니즘이란 이러한 오류를 개선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오류성은 인간의 생각과 현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재귀성’의 개념으로 연결된다. 오류에 근거한 인간의 왜곡된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져 현실에 영향을 주고, 현실의 흐름은 다시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고리가 연속적으로 순환한다. 이로 인해 사람의 의도와 행동, 행동과 결과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성과 재귀성에 따른 불확실성이 인간사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때로는 무한히 커질 수 있기에 사회든 시장이든 인간과 상호 하는 영역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단지 상황에 따라 충실한 대응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국 사람들이 시장의 예측성을 높여 불확실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할 때 소로스는 반대로 오류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여기서 기회를 포착하는 독자적인 관점을 정립하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조지 소로스에 대한 엇갈린 평가

소로스는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월스트리트에 자리를 잡는다. 오류성과 재귀성 이론에 기반을 둔 고위험, 고수익 투자로 명성을 얻는다. 1969년에 짐 로저스와 공동으로 설립한 퀀텀펀드는 400만 달러의 초기투자금이 1989년까지 20년간 연평균 수익률 34%를 기록하였다. 1992년 파운드화 강세를 유도하는 영국은행을 상대로 파운드화 약세에 배팅하여 영국은행을 굴복시켰고,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에서도 높은 수익을 올렸다.

소로스는 1979~2011년에 8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인권∙복지∙교육부문에 기부했다. 자신이 태어난 헝가리에 대규모 투자와 기부를 진행하여 공산권 붕괴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지 소로스에 대한 평가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악마’에서 ‘박애주의 자선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나뉜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입장과 생각에 맡길 사안이다. 다만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관념적 철학 공부를 통해 습득한 세계관을 실물의 첨단인 글로벌 금융시장을 이해하는 투자철학으로 발전시켜 커다란 성공을 거둔 부분이다.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관념적 철학에서 출발하여 정립된 투자론이 논리와 수학의 치열한 영역인 국제금융시장에서 독보적 성과를 거두게 하였다. 소로스가 진정한 강자가 된 것은 세계와 인간의 오류성을 인정하면서 자신 또한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 겸허하게 인정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아이디어의 출발은 칼 포퍼의 철학이었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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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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