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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ISD 패소 확정···이란 다야니 家에 730억 원 지급해야
정부, ISD 패소 확정···이란 다야니 家에 730억 원 지급해야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1.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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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법원, 한국 정부 ‘중재판정 취소’ 청구 기각
대우일렉 매각 관련 730억 원 배상 확정
론스타 5조, 엘리엇 1조 등 ISD 소송 줄이어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 이란의 가전업체 소유주 다야니(Dayyani) 가문이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대우일렉트로닉스 관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정부의 패소가 확정됐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는 약 730억 원을 배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외국 투자자가 제기한 ISD에서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각에서는 남아 있는 다른 수조 규모의 ISD 소송 결과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730억 원 정부가 배상해라···‘ISD’란?

2019년 12월 21일 금융위원회는 “지난 20일 영국 고등법원이 이란 다야니 가문과 대한민국의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한국 정부의 취소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다야니 가문은 이란의 대표적 가전 회사인 ‘엔텍합’의 대주주다. 지난 2010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다야니 측은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2010년 4월 D&A(다야니 가문이 설립한 싱가포르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한국 채권단과 지분 57%를 인수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다야니 측은 계약금 578억 원을 내고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했으나, 채권단은 자금 여력이나 채무 승계 계획 등이 부실하다며 그해 12월 ‘LOC 불충분(총 필요자금 대비 1,545억 원 부족한 LOC 제출)’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해버렸다.

다야니 측은 “계약 보증금으로 지불한 578억 원이라도 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캠코 등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은 계약 해지의 책임이 다야니에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인수계약이 해지됐는데 계약금까지 몰수당하자, 다야니 측은 한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받았다며 2015년 9월 보증금과 보증금 이자 등 935억 원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ISD(Investor-State-Dispute)를 제기했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진출한 국가의 불합리한 법령·정책으로 인해 재산적 피해를 보거나 투자유치국 정부가 협정상의 의무나 투자계약 등을 어겨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분쟁이 발생하면, 투자한 나라의 정부 잘못으로 피해를 본 외국 투자자는 해당 투자기업이 아닌 상대국 정부를 세계은행(WB)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196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2012년 한·미 FTA 체결 때부터 ISD 조항이 도입됐다. 

출처: 한국자산관리공사
출처: 한국자산관리공사

다야니 측은 채권단 중 한 곳인 캠코가 정부 측 기관이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소송을 맡은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채권단의 잘못을 인정하며 “한국 정부가 이란 가전 회사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에 계약 보증금과 보증금 반환 지연 이자 등 약 730억 원을 지급하라”고 2018년 6월 판결했다.

우리 정부는 중재판정부의 판정에 불복해 2018년 7월 중재지인 영국의 고등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2019년 12월 20일 패소가 확정됐다.

 

다야니에도 졌는데 ‘론스타’ 이길 수 있나?

정부는 영국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이제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산업부,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한 긴급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정은 국제 중재소송에서 최종 판결의 효력을 갖기 때문에 정부는 730억 원을 배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약금으로 받았던 578억 원은 채권단 계좌에 남아 있어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계약금을 먼저 사용하기 위해 협상이 진행 중이나, 자칫하면 국민 세금으로 730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협상이 원활히 이뤄진다 해도 150억 원이 넘는 지연 이자를 어떻게 마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거액의 국고 손실이 예상되었던 국제 소송에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냐는 것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영국 중재법 제67조’의 실질적 관찰 부존재 조항을 근거로 들며 “한국 정부가 아닌 채권단(39개 금융기관)과의 법적 분쟁 내용이므로 ISD 대상이 아니다”는 논리를 폈다. 또 “채권단 대표인 캠코는 대한민국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고 캠코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 중재판정부는 캠코가 정부의 관리를 받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정부로서 소송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고, 다야니 측의 청구금액 935억 원 중 약 730억 원을 한국 정부가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한국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는 앞선 소송에서 이미 패소한 동일한 논리를 들고 판결취소 청구 소송에 나섰다가 영국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당했다. ‘소송 전략 부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는 다야니 가문과 매매계약 전반에 걸쳐 곳곳에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이란에 원유·컨센테이트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낀 미묘한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듯 덜컥 다야니 가문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더니, 그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본격화되자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매매계약을 취소했다.

일관성 없는 처신과 함께 그간 ISD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ISD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참여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2007년 4월 28일 정책브리핑을 통해 “ISD는 ‘독소조항’ 아닌 ‘공평조항’”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출처: Pixabay
출처: Pixabay

주로 선진국 투자기업에 의해 제기되는 ISD 소송은 천문학적 배상금액으로 유명하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역대 ISD 소송 가운데 정부가 승소한 경우는 30%대에 불과할 만큼, 투자 자본에는 반가운 제도지만 투자받는 국가에는 부담이 된다. 호주의 경우 미국과 FTA 협상 당시 농업 부문을 양보하고서라도 ISD 조항을 제외하기도 했지만, 한·미 FTA를 추진하고 이를 완성한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ISD 조항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견해만을 고수해 왔다.

지난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다야니 가문이 ‘ISD 카드’를 들고 올 가능성이 대두되었음에도, 채권단은 확실한 명분 없이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다야니 가문이 ISD 소송을 제기하자 법조계와 학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별로 없는 국내 한 로펌을 선정해 소송을 진행했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ISD 변호사 비용 등을 위해 4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헛발질만 거듭한 결과 결국 당초 계약금보다 25% 이상 불어난 금액을 국민 혈세로 토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확장된 ‘투자자’ 개념에 발맞춘 전문적인 대응 준비해야

지금까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외국계 기업이 제기한 ISD는 모두 7건이었으나, 이 중 3건이 종결되어 현재 4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정식 제소 전 단계인 중재의향서가 3건 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소송 가능성까지 포함하면 모두 7건이 된다. 만약 모두 우리 정부가 진다고 가정한다면, 거의 13조 원의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ISD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진행 중인 4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2012년 11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소송이다. 손해배상청구액이 46.8억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5조 3,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2016년 6월 사실상 변론이 종료됐지만 ISD 판정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지연되고 있는데, 이르면 올해 안에 판정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론스타가 문제 삼는 것은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국세청이 부과한 4,000억여 원의 세금이다. 또한 외환은행을 KB금융지주 혹은 HSBC에 매각하려 할 때,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지분매각 심사를 고의로 지연하여 2조 원대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ISD 패소가 남은 ISD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다야니 가문과의 판정 결과를 면밀히 검토하여 남은 소송에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다야니 가문은 캠코가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에 명시된 FET(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의무·Fair and Equitable Treatment)를 위반했다는 입장이었다. 영국 고등법원은 다야니 가문을 ‘대한민국’에 투자한 ‘투자자’로 해석하고 손을 들어줬다.

론스타의 ISD 제소도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에 근거한 소송이기 때문에 비슷한 논리로 전개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최근 ISD에서 ‘투자’와 ‘투자자 보호’의 개념을 넓게 보는 경향성이 파악되었음에도 우리 정부만 국제투자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기업 간 분쟁에 한국 정부가 ISD 대상이 아니다”는 주장만 견지한다면, ISD 패소로 국가 혈세가 낭비되는 사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18년 5월 미국은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그해 ‘이란 금융제재 규정(IFSR)’을 전면 복원했다. 이란 중앙은행 및 50개 은행·금융기관이 제재 대상에 올랐고, 외국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금융기관을 거쳐 이란과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즉 이란과 달러 베이스 거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환 거래 시 원화를 이란 리얄화로 보내려면 미국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거쳐 달러로 송금해야만 한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군사적 충돌까지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 정부는 ‘세컨더리 보이콧’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다야니 측에 730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할 달러 우회로를 찾고 있는 실정이다.

한시적 예외로 ‘이란제재 면제’를 요청하기 위해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을 미국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이란 다야니 가문에 배상금을 송금하더라도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차원에서 문제가 없다는 보증을 받기 위해서다. 이런 적극적인 노력이 ISD 소송 준비과정에서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정부의 대처에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정민아 기자] jeong@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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