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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규제에 모바일 환전 서비스, ‘웨이즈’도 중단
변함없는 규제에 모바일 환전 서비스, ‘웨이즈’도 중단
  •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신문 정민아 기자
  • 승인 2019.11.0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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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혁신’ 강조해도···규제는 여전
갈수록 첨예한 신·구 사업자 간 갈등
혁신 외면하는 정부, 문 닫는 스타트업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 모빌리티(이동) 플랫폼 ‘타다’가 불구속 기소로 법정에 서게 된 데 이어, 이번에는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 ‘그레잇’이 사업 종료를 알렸다. 그레잇은 그동안 모바일 환전 서비스 ‘웨이즈’를 운영하며 시중은행·인천공항공사와 마찰을 빚어왔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스타트업의 ‘공동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도망 다니는 환전 서비스

정부의 창업생태계 육성 의지를 믿고 당차게 시작했는데, 돌아온 것은 규제뿐이다.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로 타다·카풀 등 모빌리티 혁신 스타트업과 기존 운송업계의 마찰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다른 업종에서도 동일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무인환전, O2O(온·오프라인 연계) 환전 등 비대면 환전 서비스 도입을 위한 기획재정부의 ‘외국환거래규정’ 및 관세청의 ‘환전영업자 관리에 관한 고시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핀테크 스타트업 ‘그레잇’은 국내 1호 온라인 환전영업자로 등장했다. 그레잇은 자격을 취득한 후, 그해 5월 모바일 환전 서비스 ‘웨이즈’를 출시했다.

웨이즈는 시중은행에 비해 환전 수수료가 최대 50% 싼 데다,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원하는 외화를 24시간 환전 예약할 수 있다. 미국 달러뿐만 아니라 일본 엔, 대만 달러, 싱가포르 달러 등 총 10종의 통화가 지원되었다. 환전한 외화는 집, 공항, 사무실 등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수령할 수 있어, 출시 1년 만에 누적 거래액 300억 원, 가입자 수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출처: 웨이즈 페이스북
출처: 웨이즈 페이스북

사업 승인 당시 기획재정부가 ‘인천공항에서 외화 전달’이라는 문구까지 명시했지만, 그레잇은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고객에게 외화를 전달하려다 공항 측의 제지를 받았다. 공항에 입주한 은행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인천공항공사가 거래를 단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웨이즈의 ‘공항 배송 서비스’는 엄연한 ‘영업행위’이므로 인천국제공항 내에서 배송하려면 공사와 직접 계약을 맺어야 한다. 지난 5월 20일에는 그레잇에 공문을 보내 “국가계약법상 국가시설에서 영업하려면 경쟁입찰을 해야 다른 사업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공항공사에 값비싼 임대료를 내고 입주한 시중은행들과의 형평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상업시설 임대차계약 또는 업무시설 임대차계약, 구내영업승인 중 하나라도 받으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공항의 ‘노점상’ 단속을 피해 그레잇 직원들은 사람이 비교적 적은 오전 5시경, 공항 사각지대에서 고객과 ‘접선’해 몰래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네거티브’ 규제? 문제는 대부분이 ‘안되는 것’

그레잇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객이 급할 때 여권이나 택배를 가져다주듯 배달을 하는 것뿐”이라며 “공공시설인 공항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외화를 전달하는 게 왜 은행 영업권을 침해하는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도 ‘배달행위’로 보는 그레잇의 편을 들어주며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인천공항공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웨이즈는 11월 8일 문을 닫게 됐다.

그레잇은 웨이즈를 종료하는 것뿐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아예 사업 전체를 접기로 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주요 배달처인 인천국제공항에서 입주 은행 및 인천공항공사와 최근까지 마찰을 빚은 것뿐 아니라, 사업 확장 시도도 번번이 정부 규제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현재 규정상 온라인 환전영업자는 은행에서 달러나 엔화를 구입해 고객에게 ‘매각’할 수는 있지만, 고객에게 달러나 엔화를 받고 원화로 제공해주는 ‘매입’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여행자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환전 서비스는 제한된다.

그레잇은 이용자 범위를 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확장하려 노력했지만, 정부는 “해외송금 라이선스를 취득하라”는 원론적인 답만 반복했다. 결국 “외화 금융 전반을 혁신하겠다”며 야심 차게 등장했던 그레잇은 정부 관련 부처들이 규제 완화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재생된 다자요의 ‘빈집 프로젝트 3호’ (출처: 다자요 페이스북)
크라우드펀딩으로 재생된 다자요의 ‘빈집 프로젝트 3호’ (출처: 다자요 페이스북)

한국판 에어비앤비로 불리며 유망 스타트업으로 손꼽히던 ‘다자요’도 현재 일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 서비스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다자요는 오랫동안 방치된 농촌 빈집을 10년간 장기 임차한 후 리모델링하여 공유하는 사업을 해왔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은 약 107만 채에 달하며 오는 2050년에는 300만 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빈집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고 있던 지방자치단체들에 다자요가 알려지자 자신의 지역으로 와달라는 지자체 협력 요청이 이어졌고, 직접 다자요에 자신이 소유한 빈집을 활용해달라는 집주인들도 100여 명에 달했다.

여행객 유입 효과에 고질적인 농어촌 빈집 문제를 해결할 대안까지 제시하며 주목받았지만, 다자요의 ‘빈집 프로젝트’는 26년 전 제정된 ‘농어촌정비법’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르면 농어촌민박사업은 ‘농어촌 지역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단독주택을 이용해야 하며, 법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자요는 ‘비어있는 단독주택을 재생해 공유하는 숙박업’이지만,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 숙박 서비스에 적용할 법은 없었다. 결국 건축법 준수·숙박업 허가 등 기존 규칙을 따르라는 주문이 이어졌고, 여러 정부 부처에서 혁신성장 사례로 소개하던 다자요는 ‘불법’으로 몰렸다. 숙박 업계에서 민원이 제기되면서 남상준 다자요 대표는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존의 규제 환경을 ‘안 되는 것 빼고 모두 허용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라고 각 정부 부처에 주문했지만, 문제는 규제 샌드박스에는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타다, 카풀에 환전, 빈집 공유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모두가 안되는 것이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본연의 혁신 기조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아직 없다.

 

눈치 보다 발 빼기···혁신 대신 외면에 문 닫는 스타트업

주류와 같은 분야에서는 규제의 벽이 더욱 두껍다.

‘인더케그’는 뚜껑을 눌러 캡슐을 터뜨리면 병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 맥주가 되는 원터치 방식 수제맥주키트를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가전박람회(CES 2020)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지만, 정부 부처는 이것을 ‘물’로 볼 것인지 ‘술’로 볼 것인지 혼선을 빚다가 오히려 혁신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국세청은 ‘술’로 정의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캡슐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알코올이 0도인 상태라며 주세법을 그대로 해석해 ‘물’로 정의했다. 강태일 인더케그 대표는 술이 아니라면 이 제품을 미성년자에게 팔아도 된다는 말이냐고 항의했지만 “현재 법령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원칙적인 답변만 계속되었다. 정상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인더케그는 50여억 원을 투자해 지은 공장을 가동조차 못 해본 채 미국 오리건주로 공장 이전을 검토 중이다.

출처: 인더케그 홈페이지
출처: 인더케그 홈페이지

‘벨루가’ 역시 법령 해석 번복으로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 벨루가는 국세청의 주류 배달 허용 발표를 보고 ‘안주와 함께 맥주를 정기적으로 시켜 먹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젊은 층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5만 명에게 판매하는 등 사업은 순조로웠으나, 음식에 ‘부수해’ 주류를 판매할 수 있다는 법령이 문제였다.

당초 벨루가는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법령 해석을 두고 여러 차례 정부 부처·기관에 법적 타당성을 문의했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없었다. 영업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음식에 부수해 주류를 판매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주류에 부수해 음식을 판매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괴상한 논리로 국세청은 벨루가에게 ‘불법’ 딱지를 붙였다.

“‘선 허용, 후 규제’ 원칙에 따라 마음껏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두 번이나 마음껏 도전했지만, 벨루가가 맞닥뜨린 것은 “불법이니 문 닫아라”는 여전히 두꺼운 규제의 장벽이다. 규제 번복으로 인해 벨루가는 두 번 다 폐업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법령·제도 개선 없이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해석만으로 풀 수 있는 규제가 32%에 달한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고 관망만 하다가 기존 업계의 반발이 커지면 해묵은 법안을 들고나와 규제하기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은 혁신적 사고와 열정을 가진 새로운 스타트업을 주인공으로 키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기존 업계와 충돌하며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숙제가 이미 주어져 있다. 여기에 정부 부처의 소극적인 대응과 법령 해석을 둔 해프닝,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까지 더해진다면 이 땅에 ‘혁신’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인천국제공항에 ‘환전 배송’이 제지당하면 여권·소지품·꽃 등 다양한 배달 O2O 사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논란은 공항뿐 아니라 다른 공공시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법령해석 문제로 투자한 후 불법이 되어 문을 닫는 스타트업이 속출하면 당연히 혁신적 도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카풀도 타다도 허용이 안 되는 ‘규제 공화국’에서 ‘100조 기업가치’ 우버 같은 스타트업의 등장을 꿈꾸는 것은 ‘백일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정민아 기자] jeong@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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