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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금융거래법 14년 만의 개편…빅테크 빗장 풀리나
전자금융거래법 14년 만의 개편…빅테크 빗장 풀리나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7.30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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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 전자금융거래법 전면 개편
최소 자본금 낮추고 후불결제 가능, 핀테크 도약 본격화
빅테크만 반사 이익? 은행권 역차별 우려도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 지난 26일 금융위원회는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전자금융거래법을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전자금융거래법이 전면 개정되는 것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6년 제정된 이후 처음이다. 금융위는 올해 3분기 중에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법 개정 전이라도 시행령 등으로 가능한 부분은 우선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급성장한 디지털금융, 거래 규모도 급증

금융위원회가 14년 만에 디지털금융 관련 규율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현재의 디지털금융 관련 규율은 2006년에 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동안 금융보안 관련 세부 규정만 10여 차례 개정되었을 뿐 큰 변화가 없어 디지털금융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 만들어진 법으로 클릭 한 번이면 몇 초 안에 지구 어디로든 돈을 보낼 수 있는 디지털금융을 관리해온 것이다.

현재 디지털금융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빅데이터·AI·클라우드 등 디지털 신기술과 결합하며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유럽연합(EU) PSD2(2018년) 등 주요 국가는 이러한 디지털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지급, 인증, 플랫폼 등에 대한 법·제도를 정비해왔다.

또한 대표적 비대면 산업으로서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거래 선호 경향과 금융회사의 재택·유연 근무 확대 등으로 이용자와 거래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간편결제 일평균 거래 규모는 2016년 255억 원에서 지난해 1,656억 원으로, 간편송금도 같은 기간 71억 원에서 2,177억 원으로 거래 규모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른 이용자 보호장치 마련 필요성도 대두된다.

출처: 금융위원회
출처: 금융위원회

지난 26일 발표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에서 금융위는 제1과제로 ‘혁신적 디지털 금융산업 육성’을 꼽았다. 이를 위해 먼저 ‘지급지시전달업’이라는 새로운 업종이 신설된다. 지급지시전달업은 ‘마이페이먼트(MyPayment)’라고도 하는데 이용자의 결제·송금 지시(지급지시)를 받아 금융회사 등이 이체를 실시하도록 전달한다. 지급지시전달업자는 고객 계좌를 보유하지 않는 대신, 고객의 동의를 받아 결제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고객의 금융계좌 정보에 대해 접근권을 갖게 된다.

권대영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마이페이먼트가 도입되면 은행 계좌의 돈이 바로 가맹점으로 가기 때문에 수수료가 줄어든다”라고 설명했다. 전자금융업자를 거치지 않고 마이페이먼트 사업자를 통해 바로 송금과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수료와 거래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이페이먼트’ 도입, 핀테크 후불결제 가능

오는 8월 도입을 앞둔 마이데이터가 마이페이먼트에 연계되면 핀테크 업체 등에서 제공하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이용자의 모든 금융자산을 조회하고 이체·결제까지 가능해진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과 정보기술 융합을 통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 모바일 간편 결제와 송금 P2P 투자·대출, 로보어드바이저, 크라우드펀딩(소셜펀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위는 마이페이먼트가 핀테크나 금융회사 등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위해 전자금융산업에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스몰라이선스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객 자금을 직접 보유하거나 정산에 관여하는 게 아니므로 자본금 등에 대해 낮은 수준의 규제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요 자본금은 3억 원 수준으로 설정됐다. 여·수신 업무 등을 영위하지 않는 전자금융업의 특성을 고려해 미국은 자금이체업에 3억 원, EU는 지급지시전달업에 7,000 만원 등 해외 주요 국가도 최소자본금을 낮게 규정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에 후불결제 기능도 허용됐다. 대금결제업자는 충전금과 결제액 간 차액(대금부족분)에 한해 최대 30만 원까지 후불결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현행 간편결제는 선불충전 시스템이다. 물건값을 결제하면 충전한 잔액 내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충전 잔액이 부족하면 결제가 되지 않았다.

간편결제 서비스에 신용카드식 후불결제가 허용된다면 여신기능은 더는 카드회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금융위는 신용카드와 달리 이자가 발생하는 할부·리볼빙·현금서비스 등은 엄격히 제한된다고 밝혔지만, 카드업계는 금융사가 아닌 업체들에 신용공여(신용을 통해 돈을 빌려주는 행위) 기능을 부여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네이버페이 포인트, 카카오페이 머니 등 대금결제업자의 선불수단 1회 충전 한도도 현 20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어 전자제품·여행상품 등 결제 가능 범위를 확대할 전망이다.

출처: 금융위원회
출처: 금융위원회

예금·대출 빼고 다 되는 슈퍼 금융 플랫폼의 등장

‘종합지급결제사업자’도 새로 도입된다. 종합지금결제사업자에 지정되면 일반 전자금융업자보다 넓은 범위의 업무를 영위할 수 있다. 현재 전자금융업자는 은행 등 금융회사와 연계한 계좌만 개설할 수 있다. 금융위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금융결제망에 참가하여 결제기능을 수행하는 계좌(Payment Account)를 발급하고 관리 업무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용자로선 은행 계좌를 이용하지 않아도 입·출금 이체, 법인 지급 결제 등 은행 수준의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가능하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에 지정되면 단일 라이센스로 자금이체업·대금결제업·결제대행업 등 모든 전자금융업의 업무뿐 아니라 사업자가 이용자의 계좌를 직접 보유할 수 있기 때문에 급여 이체, 카드대금·보험료 납입 등 계좌 관리도 가능하다. 은행 등과 달리 예금을 통한 이자 지급과 대출이 제한될 뿐이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전자금융업자 중 신청을 받아 금융위가 지정하게 된다. 기능 자체가 매우 방대한 대형사업자인 만큼, 금융 시스템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감독할 방침이다. 종합결제지급사업자는 200억 원의 자기자본과 전산역량 요건을 갖춰야 하고 금융회사 수준의 신원확인, 자금세탁방지, 보이스피싱 등 규제를 받는다. 고객자금은 모두 외부기관에 예치해야 한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대비해 관리·감독 체계도 마련한다. 빅테크는 인터넷 플랫폼 기반의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뜻한다. 해외의 경우 구글·페이스북, 국내에서는 네이버·카카오가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이다. 금융위는 빅테크의 외부청산을 의무화해 이용자의 충전금 등이 내부자금화되는 것을 막고 자금세탁의 위험도 예방한다. 빅테크의 전자금융업 합병·영업양수 시에는 사전 인가를 받도록 하고 이용자 자금을 활용한 과도한 사업 확장도 방지할 계획이다. 해외 빅테크가 국내에 진입하여 영업하는 것도 규제하기로 했다.

출처: 카카오페이 광고, 네이버페이 홈페이지
출처: 카카오페이 광고, 네이버페이 홈페이지

빅테크,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낼까

정부는 빅테크·핀테크를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 속에 금융업 규제 체계에 편입해 기존 금융사와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소비자 보호 의무를 지운다는 입장이다. 전자금융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영세 핀테크 업체에 대해 진입장벽을 해소한다는 의미가 있으나 사실상 실리는 빅테크 기업이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마이페이먼트와 종합지급결제업자가 도입되면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는 예금과 대출을 제외한 모든 은행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사와 핀테크 간의 규제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사와의 역차별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핀테크 업체에 허용된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는 기존 카드사들이 판매하는 하이브리드 체크카드와 동일하다. 하이브리드 카드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의 기능을 합친 것인데 평소에 체크카드처럼 잔액 한도 내에서 사용하다가 잔액이 부족할 때는 신용카드처럼 후불결제가 가능하다. 핀테크 업체가 라이선스 없이 은행이나 카드업에 진출한 것과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핀테크 업체는 카드사가 받는 판매 제한이나 마케팅 규제는 받지 않는다. 카드사들의 하이브리드 체크카드는 1인당 2장까지만 발급받을 수 있지만, 후불결제 서비스에는 이 같은 판매 제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핀테크 업체는 충전 후 결제 시, 결제금액의 2.5%를 적립해주는 등 리워드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위는 소비자가 플랫폼에 개인의 이용정보를 제공한 것에 따른 보상이므로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지만 강력한 마케팅 비용 규제를 받는 카드 업계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에서도 금융사는 빅테크가 쇼핑 정보는 물론 검색정보도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마이데이터 사업자 간 전송할 수 있는 개인신용정보는 금융거래 정보, 국세 및 지방세 납부 정보, 4대 보험료 납부정보, 통신료 납부정보 등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보유한 쇼핑 정보는 현재로선 사업자 간 공유가 금지된다.

시장 독과점의 문제도 제기된다. 카카오의 증권업 진출이 확정됨에 따라 플랫폼 업체인 빅테크가 거대 고객층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은행권뿐 아니라 금융권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올해 선보인 투자 서비스를 펀드, 국내외 주식, 채권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네이버 역시 지난해 11월 출범한 자회사 네이버 파이낸셜을 통해 ‘네이버 통장’을 시작으로 신용카드 추천이나 보험상품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선보인다.

천문학적인 잠재 고객을 확보한 거대 플랫폼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금융서비스는 기존 금융사 고객을 빠르게 잠식해 나갈 수도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신한금융지주, 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지주 등 은행과 카드회사를 거느린 금융지주회사도 엄청난 규모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대응을 준비 중이다.

금융위는 규제 차익과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들을 조사해 개선하고, 다음 달 중 금융사와 빅테크 간 이견을 조율할 창구인 '빅테크 협의체'를 만들어 관련 내용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빅테크 관련 관리·감독체계 개선 방안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추가로 발표할 방침이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정민아 기자] jeong@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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