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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마케팅 대안으로 떠오른 '뉴트로' 열풍의 경고
코로나 시대 마케팅 대안으로 떠오른 '뉴트로' 열풍의 경고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6.1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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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 뉴트로 열풍이 부는 사회 심리적 원인부터 찾아야

[도시경]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복고) 문화는 항상 존재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뉴트로 유행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며,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유통・식품업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응답하라 나의 청춘

미사리 라이브 카페와 7080문화로 대변되던 과거의 복고 콘텐츠는 그 시절 추억을 지닌 세대에게 주로 소비되었다. 공감할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는 복고를 아저씨들의 특이한 문화, 궁금하지만 굳이 함께 하고 싶지는 않은 촌스러움 정도로 받아들였다.

복고가 ‘레트로(retro)’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이 아닌 전 연령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다. 영화 ‘세시봉’, ‘건축학개론’, ‘써니’가 흥행에 성공했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시리즈로 제작되며 주연 배우들 뿐 아니라 극에 삽입된 그 당시 가요까지 큰 인기를 얻게 했다.

복고의 바람은 가요계에서 가장 크게 불었다. 대중은 과거의 콘텐츠를 추억하며 같이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방송 토토가’, ‘슈가맨등을 통해 잊혀진 인기가수가 무대로 소환되었고, 해체되었던 아이돌 그룹은 재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출처: 유튜브 '깡' 뮤직비디오 영상 캡쳐
출처: 유튜브 '깡' 뮤직비디오 영상 캡쳐

 


옛날 지금, 뉴트로(New-tro)


가요계의 이러한 현상은 콘텐츠의 디지털화와 뛰어난 온라인 접근성에 기인한다. 유튜브를 통해 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이 서비스되면서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발굴된 과거의 스타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최근 화제의 중심은 가수 비의 노래 '깡'이다. 기존의 복고 유행과 ‘깡 신드롬’의 차이점은 10대와 20대가 주축이 되어 각자 재해석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능동적으로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이처럼 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옛날 것(Retro)에 새로움(New)을 접목해 자기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열광하는 현상이 뉴트로(New-tro)다. 뉴트로 문화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새로운 감각과 최신 기술로 젊은 세대에게는 흥미를 느끼게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 층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중문화계뿐 아니라 패션, 유통, 식품, 인테리어 등 다양한 업계에서 ‘뉴트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브랜드의 과거 디자인과 콘텐츠를 활용한 마케팅에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70여년 전통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의 밀가루 포대를 연상시키는 패키지 디자인은 요즘 가장 트렌디하다. 대한제분과 편의점 CU가 협업하여 선보인 수제맥주인 '곰표 밀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물량 10만개를 완판했다.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역시 푸른 두꺼비로 향수를 일으키고 변화된 낮은 도수와 투명한 병으로 신선함을 살리는 뉴트로 마케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출처: LG전자 공식 블로그
출처: LG전자 공식 블로그

LG전자는 사내에서 20~30대 직원들 사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로고와 마스코트가 유행하는 것에 착안하여 ‘굿즈’를 기획했다. LG전자는 80년대 광고와 로고를 활용한 에코백, 유리컵 등을 제작하여 LG전자 SNS 홍보용 경품 및 LG베스트샵 방문객 선물 등 브랜드 충성고객을 늘리기 위한 팬덤 마케팅에 활용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식품업계에서는 인절미, 흑임자, 미숫가루, 쑥, 인삼 등 한국 전통 식재료를 새롭게 재해석한 메뉴가 출시되고, 유통업계에서는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뉴트로 기획전’을 열기도 한다.

마치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처럼 곳곳에는 뉴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넘쳐난다. 중고 음반 가게에서 LP와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고, 통바지와 배꼽티를 입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뉴트로 ‘인싸템’이다.

 


추억조차 없는 세대


‘불황에는 복고가 통한다’는 속설이 있다. 기억 보정으로 추억은 아름답고, 현재의 삶이 힘들수록 단순하고 순수했던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회귀 심리를 호황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90년대의 우리는 풍요롭고 행복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그 시대는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옛날이 좋았지”라고 막연하게 그리워하고 추억의 아이템에 열광하면서도, 막상 중장년층에게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목할 점은 이 질문에 대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세대를 칭하는 신조어)의 반응이다. 뉴트로 콘텐츠에 달린 댓글을 보면 ‘나는 97년생인데 왜 97년의 추억이 그립지?’, ‘저 때로 돌아가 살아보고 싶다. 더 익숙하고 행복할 것 같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것은 위기억(pseudomnesia)이라 부르는 심리학적 증상과 유사하다. 위기억은 과거에 없었던 일을 실제로 체험한 것처럼 회상하는 것으로, 이러한 기억 착오는 피로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작용하는 방어 기제의 하나이다.

출처: 픽사베이(pixabay)
출처: 픽사베이(pixabay)

Z세대의 피로는 이들 세대에게 익숙한 ‘수저론’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의 계급이 바뀐다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와 상대적 박탈감에 익숙하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심리적 박탈감은 개인의 경쟁력 확보를 돕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이미 붕괴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Z세대에게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과거의 ‘신화’로 여겨진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은 청년층에 유독 크게 타격을 입혔다. 코로나19 여파로 대기업의 상반기 공개채용이 하반기로 밀리거나 수시채용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상반기 공채를 진행한 대기업은 삼성, SK, 롯데, CJ, 포스코 5곳에 불과하다. LG는 상반기 신입사원 선발 비중의 70%를 채용 연계형 인턴으로 하겠다며 상반기 공채 폐지를 발표했다.

채용 시장 축소 문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올해 확실한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은 21.1%로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치인 60.7%의 3분의 1 수준이다. 통계청의 조사에서는 경제 위기의 타격으로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20만 명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도 함께 일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Boys, be ambitious! Again!


코로나19로 인하여 지금의 Z세대는 대학생은 학교생활에서 멀어졌고, 90년대생은 직장도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된다면 제조업 기업들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외환위기 수준의 본격적인 ‘일자리 충격’이 덮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우려도 나온다.

뉴트로 문화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뉴트로는 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색다름에 끌려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소비, 확산하기 때문에 경기 불황 때 등장하는 기존 복고의 ‘추억팔이’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과거는 고통이 거세되어 있기 때문에, 위기억이 주는 위로는 더욱 강렬하고 완벽하다. 최근의 뉴트로 열풍이 젊은 세대의 높은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의 반영된 것이라면, 기성세대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분석하여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한 경제 위기와 고용 불안이 주는 스트레스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뉴트로 콘텐츠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욕구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중장년층의 추억을 상품화한 것이다.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 인구 규모를 볼 때 뉴트로의 구매 주역 역시 이들이다. 젊은 세대가 SNS를 통해 활발히 소비하지만, 이를 통한 수혜자도 다시 재기할 기회를 맞은 잊혀진 브랜드와 스타다.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할 시기에 코로나19로 그 기회조차 박탈당한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주도한 뉴트로 문화에서도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소비 심리가 움츠러든 상황에 기업 입장에서는 뉴트로 열풍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화는 창의적이고 사회는 생산적일 때 새롭고 발전 가능하다. 타인이 창조한 생산물에 약간의 유머와 변조를 더한 콘텐츠는 놀거리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텍스트와 사진 대신 영상물을 활용하고 싸이월드 대신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은 그 세대에 익숙한 기술과 수단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것은 ‘뉴트로’, ‘퓨트로(Future Retro)’라는 신조어를 붙이며 재미있는 마케팅과 홍보 활동으로 과도하게 포장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로 ‘개천에서 용이 되지 않고 사는 법’, ‘미꾸라지나 붕어로 행복하기’를 젊은 세대에게 세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정민아 기자]  sturzreg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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