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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대 라임 펀드 반 토막 났는데, “정책 잘못 아니다?”
1조 대 라임 펀드 반 토막 났는데, “정책 잘못 아니다?”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2.21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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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사모펀드 개선방안 발표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금융당국 책임은 없나
원론적이고 비현실적인 대책이라는 지적도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이 펀드 환매 중단을 발표한 지 4개월 만에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보호에 취약한 사모펀드 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운용사·판매사·증권사가 상호감시 및 견제를 통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한발 늦은 대책에다 라임 사태를 일부의 문제로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여 시장의 위기의식과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라임발 환매 중단 사태, 대책 자리 잡을까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이루어졌다. 일반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통합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와 ‘경영참여형(PEF)’으로 상품의 종류가 단순화되었고,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경우 모든 전문 투자자와 1억 원 이상 일반 투자자에 해당하면 투자가 가능하도록 진입 기준을 낮췄다.

운용사 진입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해, 요건만 갖추면 누구든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등록 요건 또한 낮췄다. 2018년에는 이원화된 사모펀드 운용규제를 일원화해 자율성을 부여했고, 10% 지분보유 규제도 전면 폐지했다.

규제가 완화되자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은행에서는 파생결합펀드(DLF)를, 증권사에서는 파생결합증권(DLS)을 앞다퉈 판매했다.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어 전문 투자자 시장으로 조성된 사모펀드로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모펀드 시장규모와 사모펀드 수 (출처: 금융위원회)
사모펀드 시장규모와 사모펀드 수 (출처: 금융위원회)

그 결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경우 2015년 199.8조 원이었던 규모가 규제완화 후인 2019년 기준 416.4조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모험자본 공급’을 외친 금융당국도, 이익을 추구하는 판매사들도 투자자 보호에는 무관심했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투자가 뭔지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DLF, 라임 펀드로 큰 손해를 보는 등 여파가 일파만파 커지자, 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며 규제 강화에 나섰다.

금융위는 먼저 시장규율을 통한 위험관리 강화를 위해 각 시장참여자 간 상호 감시와 견제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운용사에게는 내부통제 강화 및 자전거래 시 거래되는 자산 가치의 임의 평가 금지, 금융사고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능력 확충을 주문했다. 개인 투자자에게 정기적으로 자산운용보고서를 제공할 의무도 추가되었다.

판매사에는 판매 시 투자자 고지의무와 판매 이후에도 사모펀드가 규약과 투자설명자료 등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할 책임을 줬다. 수탁 기관과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 증권사에는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감시기능도 부여했으며, 특히 PBS 증권사의 레버리지 제공에 따른 관리책임을 강화하였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에서 제시한 시장참여자 간 상호 감시와 견제 방안 (출처: 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에서 제시한 시장참여자 간 상호 감시와 견제 방안 (출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함께 사모펀드 실태점검을 벌인 결과 발견한 투자자 보호에 취약한 펀드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비유동성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은 펀드의 개방형 설정을 규제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자사 펀드 간 상호 순환 투자를 금지하는 한편, 모‧자‧손 구조 등 복층 투자구조에 대한 투자자 정보 제공 및 감독 당국의 모니터링도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레버리지 목적 TRS 계약의 거래 상대방을 PBS 증권사로 제한하며, TRS 계약으로 사모펀드 레버리지 한도(펀드 자산의 400%)를 넘어서지 않도록 제도화한다고 밝혔다. TRS 거래상대방인 증권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조기 종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투자자 피해 방지방안도 마련된다.

 

내부 통제 등 규제 뒷북 강화에 실효성도 미지수

금융위는 사모펀드에 대한 상시 감독·검사를 강화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3월 중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적극적인 대응 시기를 놓친 뒤늦은 대책 마련에 세간의 시각은 싸늘하다.

당초 라임자산운용의 수익률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6,200억 원 규모의 대량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도 금융위는 라임의 위법행위를 감지조차 하지 못했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사모펀드 관련 52개 운용사 점검 결과, 대부분의 사모펀드는 최근 대규모 상환·환매 연기가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펀드와 같은 위험한 운용 형태나 투자구조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확언했지만, 금융당국의 과거 전적으로 보아 또다시 유사한 피해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신뢰하기도 어렵다.

금융 검사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5년간 금감원은 한 해 열 군데 정도의 자산운용사를 검사해오고 있지만, 현재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운용사는 230여 개에 달한다. 금융위가 말하는 전수조사가 완료되려면 단순 계산으로 20년이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전체 사모펀드 운용사의 실시간 감시는커녕, 현재의 검사 역량으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가능한지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이 지난 14일 오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 합동 브리핑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금융위원회)
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이 지난 14일 오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 합동 브리핑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금융위원회)

이에 대해 금융위는 운용사와 판매사, 수탁 은행 등 시장참여자 간 상호 감시를 통한 내부통제 강화와 견제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 또한 라임 사태로 촉발된 사모펀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대책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 ‘플루토 TF-1호’(무역금융펀드) 운용사인 라임과 TRS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가 모의하여 부실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 펀드를 계속 판매한 사기 혐의가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판매사나 수탁 기관에 운용사 관리를 맡긴다는 것을 대책으로 내놨다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공모펀드와 달리 정보가 제한적인 사모펀드의 특성상, 이들이 제대로 관리·감독의 의무를 다하려 한다 해도 사모펀드의 운용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라임과 관련한 ‘금융 검사 결과’와 ‘대책’이 따로 놀며 엇박자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라임자산운용에 의혹이 제기된 후, 금감원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에 걸쳐 검사를 시행하고 라임자산운용의 위법 행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금융위는 단순한 회사의 유동성 문제로 치부하며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 역시 발견한 위법 행위를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고,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보내지도 않았다.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지 7개월 만인 지난 14일에 이르러서야 금감원도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중간 검사 결과 및 향후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과연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로 끝날 것인가

금감원은 이 날 발표를 통해, 라임의 비정상적 펀드 운용설계와 불투명한 투자의사 결정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무역금융펀드와 관련해 라임과 신한금융투자가 부실을 은폐한 혐의에 대해 검찰 등 수사기관과 협조해 엄정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라임 사태에서 직접 검사를 담당한 금감원도, 지난 2015년 사모펀드 제도 개편의 주체였던 금융위도 관리·감독 실패와 ‘뒷북 대응’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규제 완화 책임론에 대해 “모든 규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후에 발생한 사고로 제도 개선의 적정성 여부를 재단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라임 사태와 관련한 질문에서도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를 제도 개선 탓으로 연결,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조합원들은 지난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라임사태는 정책실패가 부른 참사, 금융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조합원들은 지난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라임사태는 정책실패가 부른 참사, 금융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같은 날 오전 라임자산운용은 보도자료를 통해 모펀드 ‘플루토 FI D-1호’ 순자산 가치(지난해 10월 말 기준 9373억 원)는 46% 하락한 4,606억 원, ‘테티스 2호’(2,424억 원)는 17% 하락한 1,655억 원으로 조정됐다고 밝혔다. ‘라임 AI스타 1.5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1·2·3호’(472억 원) 등 3개의 자펀드는 모펀드 기준가격 조정에 따라 전액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1조 6,000억 원의 펀드 중 1조 원이 넘는 금액이 반 토막이 나고, 개인투자자 중 상당수가 빈털터리가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라임’의 문제 또는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라고 일축하며 사모펀드 본연의 ‘순기능’에 주목해달라는 금융당국의 요청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라임자산운용의 수익률 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 금융당국은 “향후 필요하면 검사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금융당국이 ‘필요성’을 체감하는 기준이 투자자의 조 단위의 손실이라면, 안이한 위기의식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라임에 이어 알펜루트의 환매 중단 사태까지 벌어져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청동기를 발명했는데 청동기가 살인과 상해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청동기를 활용을 안 하면 계속 석기시대에 머물 수 있다”라며 사모펀드 시장이 보다 활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김정각 자본시장정책관의 표현처럼 “사모펀드가 칼날 내지는 첨탑 위에 서 있는 사업”이라면, 그 칼날 위에 전문 투자자가 아닌 일반 투자자가 설 수 있게 ‘필요 최소한’의 규율체계를 도입해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책이 타당한 것인지부터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지 않을까. 금융당국의 책임감 있는 행보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엠엔에이경제신문=정민아 기자] jeong@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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