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승계, M&A에서 길을 찾다 ①] 창업 1세대의 은퇴와 함께 변화해야 하는 승계의 생태계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창업 1세대가 은퇴할 시기를 맞았지만,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후계 구도를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후계자 문제로 경쟁력 있는 기업이 문을 닫는다면 이는 창업자 가족 손실을 넘어 일자리와 기술, 지역경제가 함께 사라지는 사회적 손실이 될 수 있다. 이제 승계는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회사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 연재는 가업승계와 M&A를 함께 놓고, 기업과 사회 모두에 바람직한 승계의 길을 실무 관점에서 짚어 보고자 한다.
[한국M&A경제]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기업의 승계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세라젬 창업주 이환성 회장의 기업 승계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20여 년간 함께 일한 전문경영인 이경수 대표이사를 성인 양자로 입양해 기업을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국내 기업에서 보기 드문 경영권 승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방식의 승계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기업 승계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술보증기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박성민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기술보증기금이 보증을 선 기업 가운데 대표자가 70세 이상인 곳은 올해 8월 기준 2,979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 1,866곳에서 4년도 안 돼 60%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보증기업은 8만 4,239곳에서 8만 927곳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대표자가 60세 이상인 기업으로 넓히면 1만 9,637곳, 전체의 24.3%에 이른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 중소기업 기업 승계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대표의 66.7%가 이미 60세를 넘었다. 이 중에서 자녀에게 승계할 계획을 세우지 못한 기업은 27.5%였고, 자녀 승계가 어려우면 회사를 팔거나(21.1%) 문을 닫겠다(9.1%)는 응답도 30.2%에 달했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에 회사를 세워 압축성장을 이끈 창업 1세대의 은퇴가 숫자로 다가오고 있다.
창업 1세대가 일군 중소·중견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전자, 기계 산업의 공급망을 받쳐 왔고, 지역 일자리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승계 준비는 생각보다 더디다. 승계 계획이 없는 이유로 경영자들은 '자녀에게 무거운 책무를 주고 싶지 않아서'(42.8%), '자녀가 원하지 않아서'(24.7%)를 꼽았다. 상속세 부담도 큰 걸림돌이다. 문제는 승계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계자를 키우고, 지분 구조를 정리하고, 세금 문제를 설계하는 데는 보통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준비 없이 맞는 승계는 경영 공백과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7년에 이미 '2025년 문제'를 경고한 바 있다. 2025년까지 70세 이상이 되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약 245만 명에 이르고, 그 절반가량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그대로 두면 일자리 약 650만 개와 국내총생산(GDP) 약 22조 엔이 사라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익을 내면서도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 문을 닫는 '흑자 폐업'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응해 친족 승계를 지원하는 세제 특례와 함께, 제3자에게 회사를 넘기는 '사업 승계 M&A'를 정책적으로 키워 왔다. 공공 승계지원센터를 전국에 설치하고,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10~20년 늦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만큼 일본의 시행착오에서 배울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승계의 선택지를 넓혀야 할 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업 승계는 주로 '자녀에게 물려주기'를 의미했다. 가업승계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오너 가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창업자의 철학과 책임감을 이어 갈 수 있다. 수십 년간 쌓은 거래처와 지역사회의 신뢰도 그대로 이어진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같은 제도로 이를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계자가 없거나 준비되지 않았는데 친족 승계만 고집하면, 결국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이때 M&A는 '회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계속 살아남게 하는 또 하나의 승계 방식'이 될 수 있다. 역량 있는 인수자가 회사를 이어받으면 고용과 기술이 유지되고, 새로운 자본과 경영 역량이 더해져 회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도 있다. 경영자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앞의 실태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4.5%가 제3자 승계와 M&A를 지원하는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물론 M&A가 만능은 아니다. 인수 뒤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직원이 떠나거나, 단기 수익만 노린 인수자가 회사의 핵심 역량을 훼손한 사례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물려줄 것인가, 팔 것인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우리 회사에 가장 적합한 승계 방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방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 질문이다. 친족 승계, 전문경영인 체제, 임직원 인수, 제3자 매각은 서로 배타적인 선택이 아니다. 지분 일부를 매각해 상속 재원을 마련하거나, 창업자가 일정 기간 경영에 남아 단계적으로 넘기는 방식처럼 여러 방법을 조합할 수도 있다.
◇ 성숙 경제에 필요한 승계 생태계
고도성장기에는 기업을 창업하고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가 겹친 지금의 성숙 경제에서는 이미 일군 기업을 어떻게 잘 이어 가느냐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후계자 문제 하나로 사라지는 것은 개별 가문만의 손실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손실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느 한 방식을 정답으로 내세우는 일이 아니라, 기업이 처한 상황에 맞게 승계 방식을 고를 수 있는 '건강한 승계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세제는 내실 있게 다듬고, 제3자 승계를 위한 M&A 시장도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게 키워야 한다. 경영자 스스로도 승계를 '은퇴 직전의 숙제'가 아니라 '회사의 장기 전략'으로 보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좋은 승계란 결국 회사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지키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이 칼럼은 앞으로 세금, 기업가치 평가, 인수자 유형, 매각 절차, 가족 간 지분 정리, 인수 후 통합까지 승계와 M&A를 함께 검토하려는 경영자와 실무자에게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짚어 보고자 한다.
[참고자료]
기술보증기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박성민 의원실 제출자료(2026년 8월 기준, 기보 직접보증 기업 대상)
중소기업중앙회, 「2025 중소기업 기업 승계 실태조사」(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대표·임원·후계자 600명 대상)
일본 중소기업청, 「中小企業・小規模事業者におけるM&Aの現状と課題」(2019)
[한국M&A경제=신광철 애틀러스R&C 연구소장, 경제학박사] kcshin@ar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