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콘텐츠 그룹 탄생∙∙∙바니제이·올쓰리미디어, 6.6조 원 합병 합의
합산 매출 44억 유로, 6조 6,000억 원 돌파 AI 시대 IP 주도권 확보 나선 유럽 전략
[한국M&A경제] 유럽 주요 엔터테인먼트 제작사인 바니제이(Banijay)와 올쓰리미디어(All3Media)가 3일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레드버드 IMI(RedBird IMI)가 소유한 올쓰리미디어와 바니제이가 엔터테인먼트 제작 부문을 통합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번 거래로 유럽 최대 규모의 멀티미디어 제작 그룹이 탄생하게 됐다.
두 회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번 합병의 파급력이 얼마나 클지 가늠된다. 바니제이는 인기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와 리얼리티 프로그램 '빅 브라더'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제작사다. 올쓰리미디어는 '더 트레이터스'와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등 글로벌 히트작을 연이어 배출했다. 양사의 2024년 합산 추정 매출은 44억 유로(약 6조 6,000억 원)를 넘는다.
두 회사는 누구인가…IP 포트폴리오의 무게
이번 M&A의 무게를 가늠하려면 양사의 자산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니제이는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와 글로벌 리얼리티 포맷 '빅 브라더' 시리즈를 보유한 유럽 대표 독립 제작사다. 단순히 작품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빅 브라더'처럼 세계 수십 개국에서 로컬 버전으로 제작·판매할 수 있는 검증된 포맷 IP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 자산이다.
올쓰리미디어는 '더 트레이터스'와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등 최근 수년간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에서 연이어 히트작을 배출한 제작사다. 특히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넷플릭스 글로벌 상위권에 오르며 기존 IP를 재가공한 콘텐츠가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직접 증명한 사례다. 두 회사가 각각 쌓아온 IP 라이브러리와 포맷 카탈로그를 합산하면, 협상 테이블에서의 무게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레드버드 IMI는 왜 팔았나…사모펀드의 출구 전략인가, 재편인가
이번 거래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각은 올쓰리미디어의 모회사인 레드버드 IMI의 셈법이다. 레드버드 IMI는 미디어·스포츠 분야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온 사모펀드 계열 투자사로, 올쓰리미디어를 단순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니제이와의 합병을 선택했다. 이는 전통적인 사모펀드식 '매입 후 매각'(Buy and Sell)이 아닌, 보유 자산을 더 큰 그룹에 통합해 가치를 극대화한 뒤 지분을 유지하는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
합병 이후 레드버드 IMI가 합병 법인에서 어떤 지분율과 의결권을 확보하느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 현금화보다 통합 법인의 지분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면, 이는 미디어 시장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베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모펀드가 포트폴리오 기업을 전략적 파트너사와 합병해 기업 가치를 키우는 방식은 최근 글로벌 M&A 시장에서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전략이다…왜 지금 합쳐야 했나
프랑수아 리아히(François Riahi) 바니제이 CEO는 이번 합병에 대해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진 산업 환경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현재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정확히 짚는다. 넷플릭스·아마존·애플 같은 거대 플랫폼이 콘텐츠 수급 협상에서 가격 결정력을 키워가는 상황에서, 소규모 독립 제작사는 협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리아히 CEO는 파라마운트의 워너브라더스 인수가 넷플릭스에 맞설 강력한 경쟁자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바니제이에도 긍정적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플랫폼 진영의 몸집이 커질수록 콘텐츠 공급자도 협상 테이블에서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M&A의 동기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협상 구조의 재설정'에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리아히 CEO는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번 합병을 통해 글로벌 콘텐츠 공급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합병 후 탄생하는 그룹은 연 매출 6조 6,000억 원 이상의 덩치로 복수의 플랫폼과 동시에 협상할 수 있는 포지션을 갖추게 된다. 단일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고 협상 카드를 다변화하는 것, 이것이 이번 합병의 핵심 전략이다.
AI 시대, IP 소유권이 M&A의 새 기준이 됐다
이번 합병을 단순한 '규모 키우기'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리아히 CEO는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식재산권(IP)의 소유와 활용이 핵심 자산으로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AI가 콘텐츠 생산 비용을 낮추고 배급 방식을 바꾸는 국면에서는, 원천 IP를 얼마나 많이 보유했느냐가 기업 가치의 새로운 척도가 된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M&A 시장에서 IP 포트폴리오를 핵심 가치로 평가하는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콘텐츠 자산은 AI 학습 데이터로도 활용될 수 있고,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법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바니제이와 올쓰리미디어가 합쳐 보유하게 될 방대한 IP 라이브러리는 단순 콘텐츠 수익을 넘어 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이 유럽 독립 제작사 시장 전반의 통합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플랫폼 중심의 수직 계열화에 맞서 독립 제작사들이 수평적 연대로 대응하는 패턴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바니제이·올쓰리미디어 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유사한 규모의 제작사 간 추가 M&A 논의에도 불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합병 이후가 진짜 시험대…통합의 과제
물론 합병 발표가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조직 문화와 제작 방식이 다른 두 회사를 실질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수반한다. 특히 창작 중심의 제작사 M&A에서는 핵심 크리에이터와 프로듀서의 이탈이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합병 후 조직이 안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창작 인력이 남아 있을지가 통합 시너지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또한 양사가 각각 맺어온 스트리밍 파트너십과 방송사 관계가 합병 이후에도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일부 플랫폼은 특정 제작사와의 독점 파트너십을 선호하는데, 합병으로 경쟁사와의 관계도 포괄하게 될 경우 기존 계약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이번 합병의 진짜 성패는 수십 억 유로 규모의 합산 매출이 실제 협상력과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M&A경제=구나연 기자] kny@kmn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