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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소말리아 해적, 베네치아 상선, 런던 선박 펀드의 공통점
[김경준 칼럼] 소말리아 해적, 베네치아 상선, 런던 선박 펀드의 공통점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6.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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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 통해 알 수 있는 상업의 역사

[한국M&A경제] 2011년 1월 아프리카 동부해안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우리나라 상선 삼호쥬얼리호를 납치하였던 소말리아 해적을 우리나라 해군이 소탕하고 인질 전원을 모두 구출하였다. 당시 침착하고 용기 있게 사태에 대응했던 석해균 선장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소말리아의 유구한 상업의 역사가 해적들에게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적 사업에도 투자에 대한 이익분배, 위험부담에 따른 보상, 투자지분의 이전메커니즘 등이 적용되는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고 있는데, 선진국 경영대학원의 수업 과정으로 소개될 정도로 정교한 수준이다. 도덕적 정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해적도 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하는 사업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인류 역사상 상거래가 시작된 이래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인센티브 원칙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소말리아, 고대 상업 중심지

‘아프리카의 뿔’이라고도 불리는 소말리아는 고대 세계의 상업 중심지였다.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소말리아의 선원과 상인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교역을 주도했고, 로마 시대에는 인도, 그리스 간 중계무역을 통해 크게 번성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아프리카에서 독립을 유지하는 유일한 나라였을 정도로 정치∙경제적으로 강력했던 인구 800만 명의 소말리아는 1990년대 초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해적집단 본거지가 되었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무역의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배경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통상 2척의 공격선과 1척의 보급선이 필요한 해적 사업은 투자자와 행동대원 모집으로 시작된다. 목숨을 걸고 직접 상선을 공격하는 행동대원은 A급 지분을,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는 육상지원팀은 B급 지분을 인정받고, 해적질이 성공하여 몸값을 받으면 배분이 시작된다.

착수 자금 투자자에게 몸값의 30%가 우선 돌아가고, 팀의 선임자들에게 10%, B급 지분 보유자들에게는 정해진 고정급이 지급된 후 나머지를 A급 지분 보유자가 차지한다. 이익 배분이 합리적이지 않으면, 팀원들이 몸값을 훔쳐 달아날지 모르기 때문에 철저히 인센티브 제도를 유지하고, 보상 수준은 공평하게 책정된다.

유엔이 소말리아 해적이 2005~2012년 선박 179척을 나포하여 인질 몸값 등으로 4억 달러(약 4,542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하는 수익성 높은 해적사업에 투자하고 지분을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증권거래소도 생겨났다. 해적증시는 2009년 8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인도양 해안 도시 하라디해레에 개장했고 지역주민들이 주요 투자자다. 수익성이 높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각지의 소말리아 출신 이민자들까지 투자에 나서고 있고, 해적 행동대원으로 목돈을 번 사람들이 투자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무정부 상태에서 오는 공권력 부재로 소말리아 현지인들이 정상적인 직업으로 살아갈 방도가 없는 절박한 상태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시작된 해적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자금을 조달하고 수익을 분배하는 사회적 시스템까지 갖춰가면서 지역사회의 중심인 거대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소말리아 해적은 초기의 생계형 범죄가 아니라 해적질에 필요한 자금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고 국제조직이 해적들에게 선박 운항 정보를 제공하는 거대한 국제 비즈니스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상거래 보편적 관행 따르는 소말리아 해적

이러한 소말리아 해적 사업의 운영방식은 르네상스 시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여 전성기를 누렸고, 근대 해상무역 관련 제도의 원형을 만들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선운영과 동일하다. 베네치아가 해상교역에서 만들었던 투자지분의 개념은 후일 네덜란드에 의해 주식회사 제도로 발전한다. 베네치아에서는 배를 만드는 돈을 대는 초기 투자자, 배를 타고 교역에서 나서는 선장과 선원, 배에 실을 화물에 투자하는 3종류 투자자가 있었다. 항해에서 얻은 이익을 각 그룹에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기준이 있었고, 이 투자지분을 거래할 수도 있었다.

이를 보면 소말리아 해적이나 베네치아 상선이나, 요즘의 선박 펀드나 모두 위험부담과 이에 따른 보상이라는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위험에 투자하고 이익을 얻고 배분하는 사업의 본질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오늘날 상거래 관행과 제도는 르네상스 시대 지중해 무역을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근대 대항해 시대에 세계에 진출했던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주로 확립되었다. 특히 17세기 초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효시가 된 주식회사는 유한책임제도를 도입하여 많은 사람의 소규모 자본을 모아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기업제도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국제적 골칫거리가 되어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조차 투자와 이익배분에서 상거래의 보편적 관행을 따르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비록 해적질 자체는 비난받아야 할 범죄이지만, 투자와 이익의 관점에서는 투자지분, 위험도에 따른 배분 등이 합리적으로 구성된 점을 보면 상거래의 보편적 원칙이 존재함을 역사를 통해서 실감할 수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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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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