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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로빈슨 크루소, 역사상 최초의 개인과 자유
[김경준 칼럼] 로빈슨 크루소, 역사상 최초의 개인과 자유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6.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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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신분제 약화가 불러온 독립된 개인의 개념

[한국M&A경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모여 살면 자연히 서열이 생겨나고 사회적 분업이 이루어져서 소위 지배자와 피지배자, 귀족과 평민, 사농공상 등의 신분이 생겨난다.

1만 년 전 시작된 농경은 필연적으로 정해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이에 따른 분명한 사회질서가 요구된다. 초기 생존의 필요성 때문에 개인들이 모여서 무리 지었는데, 일단 무리가 형성되고 공동체, 국가형태로 발전하면서 사회적 제도가 확립되고 종교까지 생겨나면 개인은 그 자체보다는 집단 내의 개인으로 정의된다. 즉, 자연인 홍길동은 소속된 신분, 가족, 혈연, 종교, 지역, 국가, 기타 직능단체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규정된다.

근대 이전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신분제는 사회경제적 제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면서 지배적 종교로 뒷받침하였기에 개인은 이러한 구조를 떠나서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 인쇄술로 정보와 지식의 유통이 확산되면서 16세기 전반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졌고, 이어서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전근대적 사회경제적 신분제가 약화되고 집단에서 독립된 개인의 개념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얻는 개인의 개념

개인이 소속된 집단을 떠나 물질적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자연인으로서 개인의 개념은 1719년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잘 표현하고 있다. 어린이 동화책으로 널리 읽히는 로빈슨 크루소는 일종의 모험기이지만, 인간의 사고 범위에 독립적인 근대적 개인의 출현을 알리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디포의 (1660~1731) 활동기는 영국이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시기에 강국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해상강국으로 도약한 후 네덜란드의 도전도 격퇴하고 명실상부한 전성기로 상승하던 시점이었다. 디포가 환갑의 나이에 발표하여 대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로빈슨 크루소>는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의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704년 셀커크는 항해 중 선장과 다투면서 징벌로 칠레 해안의 후안 페르난데스 섬에 버려져 4년 동안 살다가 영국으로 귀환하였다. 로빈슨 크루소는 항해에 나섰다가 배가 난파되어 외딴 섬에 도착하여 27년을 홀로 생활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이다. 

고전의 중의적 특성상 로빈스 크루소는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지만,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관점이 집단에서 분리되었지만 문명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개인적 삶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점이다. 외딴 섬에 홀로 남아 기존의 모든 사회적 관계와 단절된 상황에서 27년을 살아간다는 이야기 자체가 집단에서 독립된 개인적 삶의 가능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담은 집단과 개인의 관점에서 독립된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였다. 

로빈슨 크루소가 산업혁명과 근대를 거치면서 집단에서 독립되어 나온 개인을 상징했다면, 20세기 정보화 혁명 이후 개인의 힘이 급속히 커지면서 21세기는 개인이 집단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전 세계 누구나 인터넷에 연결된 디바이스만 있으면 검색엔진을 통해 인류가 축적한 지식 자체에 무제한으로 접근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사진=픽사베이)
전 세계 누구나 인터넷에 연결된 디바이스만 있으면 검색엔진을 통해 인류가 축적한 지식 자체에 무제한으로 접근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사진=픽사베이)

◇20세기 후반 정보혁명 이후 나타난 세상

“나는 제삼 세계 출신입니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읽고 쓸 줄도,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모르는 사람도 세상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탄자니아의 어린이가 미국의 대통령과 똑같은 정보를 얻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요.”

구글 최초의 직원 중 한 명으로 구글 검색엔진의 공동개발자이고 ‘검색의 차르 황제’로 불리우는 벤 고메스(Ben Gomes)의 말이다.

탄자니아(Tanzania)에서 태어나 인도의 방갈로르(Bangalore)에서 성장하였고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정규교육을 받았다. 고메스가 표현한 대로 전 세계 누구나 인터넷에 연결된 디바이스만 있으면 검색엔진을 통해 인류가 축적한 지식 자체에 무제한으로 접근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500년 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종이로 만들어진 콘텐츠의 보급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저개발국에서는 책값이 상대적으로 비쌌고 공공도서관 보급도 제한되어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본격화된 정보혁명은 이러한 제한을 사실상 없애버렸다. 언제 어디서나 검색엔진을 이용하여 제한 없이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격차는 존재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오늘날에도 개인은 집단에 소속되어 정체성을 형성하고 분업에 따라 생활한다. 그러나 과거처럼 개인이 특정 집단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으며, 집단을 떠난 삶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이다. 즉, 과거에는 출신 혈연, 지역, 국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적고 이를 떠난 개인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이런 모든 항목이 개인의 선택범위에 들어와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정보기술 발달은 개인의 역량을 더욱 강화시켰다. 과거 국가 단위에서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에 개인도 인터넷을 통해 접속할 수 있고, 간단한 장비만 갖추면 개인이 전 세계를 상대로 동영상을 송출하는 방송국,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언론, 특정한 분야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정의할 수 있지만, 개인이 집단에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분리되어 독립적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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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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