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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인간이 구성하는 집단의 기본단위
[김경준 칼럼] 인간이 구성하는 집단의 기본단위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6.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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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형성하는 무리의 특징

[한국M&A경제] 지구 상 모든 생물의 목표 함수는 생존과 번식이고,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가장 유리한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홀로 생활하면서 짝짓기 등 필요한 만큼 타 개체를 만나는 패턴도 있을 수 있고, 막연히 모여있기만 해도 장점이 있기 때문에 모이는 원생동물, 물고기 등 군집형 생물들이 있으며, 모여서 나름의 위계질서와 의사소통 구조를 가져서 집단과 조직의 성격을 가지는 종류가 있다.

무리 짓는 경우에도 야생상태에서 살아가는 집단의 크기는 임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개체의 특성이 영향을 받아서 최적 규모로 설정된다. 무리가 많을수록 힘이 커져서 적에게서 안전하지만, 무리의 움직임이 둔하고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 어려워 생존 위험성이 높아진다.

반면 무리가 너무 적으면 움직임이 빠르고 작은 식량으로도 굶주리지 않아도 되지만, 큰 무리를 만났을 때 쉽게 공격받을 위험이 있다. 또한 무리가 커지면 이에 따르는 위계질서, 의사소통 등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개체의 특성에 따라서 무리를 짓는 적절한 자연수가 형성되며, 이 숫자는 본능적으로 유지된다.

야생생활의 무리에서도 이 숫자를 넘어서면 분가 형태로 규모를 다운사이징하여 무리 전체의 생존력을 높인다. 고등어, 정어리와 같이 막연히 무리 (school) 짓는 본능만 있는 어류, 파충류와 달리 군집생활 포유류는 위계질서와 분업구조를 가진다. 들개, 늑대, 하이에나, 사자, 침팬지와 같은 무리들은 리더의 존재와 역할, 사회적 관계에서의 서열, 암수간의 역할 분담이 분명히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던바의 법칙

인간이 형성하는 무리의 자연적 크기에 대해서는 로빈 던바 박사가 확립한 ‘던바의 숫자’가 유명하다. 고대 수렵채집 사회에서 집단이 커질수록 사냥도 잘 되고, 맹수에 대항하기도 쉬워지는 장점이 있지만, 지능과 감정이 있는 영장류의 경우에는 집단 내부 갈등도 비례해서 커진다. 따라서 집단 구성의 이익과 비용의 접점에서 고대 인류의 적절한 규모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전제하고 한 부족의 평균 인원이 150명 단위였음에 주목하였다.

20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에렉투스의 뇌 용적은 700~800cc였고 약 70~80명의 집단을 이루며 살았다. 20~30만 년 전에 출현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의 뇌 용적은 1300~1400cc로 늘어났고, 집단 규모도 2배가량 증가하여 150명으로 커졌다. 수렵과 채취 생활을 하면서 형성된 진화적 최적 집단 규모인 150명이 신석기 문명 발생 이후에도 150명 단위가 다양한 조직의 기본 구성단위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던바의 법칙’에서 150명의 규모가 적정 수준으로 수렴된 가장 큰 동인은 잡담이었다. 80명 이내의 집단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직접 알고 지낼 수 있다. 하지만 150명 정도가 되면, 사람들 모두가 직접 알고 지낼 수는 없다. 이는 집단 내에서 잘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 위험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때부터 서로의 평판, 신뢰성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이것이 언어가 발달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계속 만나고, 서로 잡담한다. 끊임없는 잡답 속에서 얻어가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이다. 만약 갑이 잘 모르는 사람 을에게 동업을 제안받았다면, 갑은 먼저 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사기꾼인지부터 알아볼 것이다. 만약 갑이 을의 정체를 도저히 알아낼 수 없으면, 을은 갑을 속이고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농경이 시작되고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인 기원전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산재되어 있던 마을 인구는 150명 내외였고, 11세기 노르만족 출신으로 영국 왕이 된 정복왕 윌리엄이 공격했던 150명의 마을 규모는 18세기 산업혁명 전까지 영국 농촌의 표준규모였다. 고대 로마 군단의 기간 전투조직이었던 백인대(켄투리아)는 120명이며 오늘날 육군 중대 병력도 120명 내외이다. 일반 조직에서는 계층적 관리구조 없이 1인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직원의 숫자를 최대 150~200명으로 상정한다.

 

던바의 법칙(자료=네오지아)
던바의 법칙(자료=네오지아)

◇던바의 법칙에 투영된 현대 기업 조직

경험이 압축되어 뿌리내린 본능에 기반한 자연수의 강력함은 현대에서 성공하는 기업의 조직에도 ‘던바의 법칙’이 투영되어 있음에서 알 수 있다. 1959년 쿄세라를 창업해서 오늘날 종업원 7만여 명이 근무하는 우량기업으로 성장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아메바 경영이라는 독특한 조직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아메바 경영의 요체는 각각 사업성격에 맞는 적절한 사업규모와 가장 밀접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 숫자를 매치시켜 조직을 구성하고 이를 계속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던바의 법칙’처럼 인간의 본능화 된 숫자로 조직을 구성하니 리더십과 의사소통이 적절히 이루어질 것이고, 또한 이를 화석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적과 상황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시키니 내부 경쟁 및 협력을 통해서 자연스러운 환경적응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아메바 경영이라는 이름처럼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직에 적용시킨 개념이다. 

아메바 경영과 양상은 다를지라도 현대 인간이 만든 수십 만 명의 거대한 조직들도 조직의 최하단까지 내려가 보면 100~150명 단위의 조직들이 위계질서와 네트워크로 묶여 있는 거미줄과 같은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수백만 년의 역사를 가진 진화적 본능이 수만 년 역사의 문명 뒤에 감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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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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