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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칼럼] 흥미로운 분야를 중심으로 확장하여 내공을 키운다
[김경준 칼럼] 흥미로운 분야를 중심으로 확장하여 내공을 키운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승인 2021.04.1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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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범위와 축적된 컨텐츠가 많은 인문학은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M&A경제] ‘고전’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책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서, 졸업 이후에는 신문잡지 기사 등을 통해서 많은 고전들의 이름을 접한다. 자주 접해서 익숙해지지만 정작 책 자체를 읽을 기회는 좀처럼 없다. 또한 200여권 내외라고 일컬어지는 인류 문명의 고전을 접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정작 읽으려 들면 분량도 많을뿐더러 막상 읽어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철학, 문학, 역사 등 다방면에 걸친 기초지식이 대부분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았더라도 교양으로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헤겔의 정신현상학, 다윈의 종의 기원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모두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전공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은 가깝고도 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인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사회적 분업은 학문도 마찬가지이고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분야의 전공자로서 깊은 지식을 쌓은 경우도 다른 분야는 물론 인접분야의 지식은 한계가 있다. 소위 철학분야를 서양철학, 동양철학으로 분류했을 때 평생을 공부해도 전체를 관통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다만 전공자로서 전체적인 맥락을 일정 수준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 기대치이다. 나아가 철학전공자가 역사, 문학과 같은 다른 분야를 해당 분야 전공자의 수준만큼 이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문학이라고는 하지만 해당 전공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는 더욱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직업적 연구자의 특성상 자기 분야를 깊이 파고들기에도 시간은 충분치 않고, 일반 직업인처럼 일을 통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여지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학 전반에 걸쳐 깊이 이해하고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할 만큼 지식이 방대하다. 예컨데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l)라는 익숙한 명제가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그리스 철학과 중세신학이 주류이던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이성을 통해 이해하는 능력의 가치를 통찰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의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의미하였다. 이는 당시 존재했던 지식의 양이 그만큼 적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20세기를 대표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2016년 2월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 철학, 미학, 역사학, 문학 등 다방면으로 넘나들었던 천재이지만, 오늘날 지식의 극히 일부만을 섭렵할 수 있었다. 이처럼 21세기에 전문가와 일반인의 지식과 정보의 격차는 크게 축소되었다. 전공자는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 읽고 생각하였기에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들을 학습을 도와주는 안내자로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이처럼 범위도 넓고 축적된 컨텐츠도 많은 인문학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광대한 바다와 같은 인문학을 넓고 깊게 접근하는 것은 소위 인문학 전반을 섭렵하는 평생을 책만 보는 전공자도 불가능한데 하물며 인문적 소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일반인에게는 어불성설이다. 이런 배경에서 직업을 가진 일반인의 입장에서 인문학에 접근하는 의의와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인문학 모르고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다만 인문학을 통해서 폭넓은 지식을 얻고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깨달아 삶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이는 비단 인문학이 아니라 소위 자연과학, 사회과학적 지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의 지식이란 인간의 삶에 봉사할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 지식 자체를 절대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범위도 넓고 축적된 컨텐츠도 많은 인문학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직업을 가진 일반인의 입장에서 인문학에 접근하는 의의와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픽사베이)
범위도 넓고 축적된 컨텐츠도 많은 인문학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직업을 가진 일반인의 입장에서 인문학에 접근하는 의의와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픽사베이)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부터 관심을 갖고 꾸준히 접할 것

자신의 삶에서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가 교양이든 취미이든 오락이든 있다고 생각하면 흥미를 느끼고 접근하기 쉬운 영역에서 가까이 접하면 된다. 아무리 인문학을 교양으로서 접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도 어차피 모든 영역을 좋아하기는 어렵다. 철학 역사 문화 예술 모든 분야를 섭렵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은 전문가의 영역에서도 어려운 경지이다. 따라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접하다 보면 주변적 영역들로 관심이 확장되고 부분적 지식들이 연결되고 통합되면서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인문학을 주로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접한다. 오락으로 역사를 대하다 보니 취미가 되었고, 생각을 정리하여 체계를 잡아서 컨텐츠로 구성하게 되었다. 역사를 읽다보면 자연히 당대의 문화 예술 및 세계관에도 일정한 관심이 생겨나게 되어 자연스럽게 지식이 인접분야로 확장된다.

또한 역사를 그 자체로 읽고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역시 핵심은 역사를 통한 인간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의 기초체력은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을 통한 경험이다. 성인이 되어 결혼해서 자식을 두고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과 시간이 흐르면서 연로해지면서 세상을 떠나시는 부모님에 대한 상념들이 과거에 책의 문장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부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한다. 30년에 가까운 사회생활에서 겪은 희로애락과 성취와 실패, 그리고 조직생활의 경험이 역사적 사건들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하는 힘이다.

최근 들어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었다면 오락과 교양으로 접한 인문학적 지식들이 갈무리되지 않아 책 읽고 아는 것은 있어도 깨달음의 폭은 매우 좁았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M&A경제=편집부] news@kmn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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